삼각산 화계사


참선수행과 국제포교의 중심 사찰

삼각산 화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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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산스님

숭산스님

숭산스님은 1927년 평안남도 순천에서 출생하였습니다. 당시는 일본 총독의 압정 밑에 있었으므로 정치적, 문화적 활동은 극심하게 탄압 받고 있었습니다.
1944년 숭산스님은 지하 독립운동에 가담했습니다. 그로 인해 몇 달 뒤 일본 헌병대에 의해 체포 수감되어 좁은 감방에서 갖은 곤욕을 치루었습니다. 감옥에서 풀려난 이후 두 명의 친구들과 함께 부모님으로부터 돈 500원을 훔쳐내어 경계가 삼엄한 만주국경을 넘어 만주에서 독립군과 합세하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다음 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동국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하게 되었으나, 당시는 남한의 정치적 상황이 극도로 불안했던 때였습니다. 결국 숭산스님은 자신의 정치적 운동이나 학문으로는 사회에 도움을 줄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머리를 깎고 절대적 진리를 얻기 전에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을 맹세하고 산으로 들어갔습니다.

처음 세 달 동안 그는 대학(大學), 중용(中庸), 논어(論語) 같은 유교경전을 공부하였으나 그것만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친구 중 한 사람이 작은 암자의 스님이었는데 스님에게 금강경을 주었습니다. 이것이 불교를 처음 접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그 책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습니다. "무릇 모양이 있는 모든 것은 모두 허망한 것이다. 만일 모든 모양이 있는 것이 모양이 아님을 알면 그가 곧 부처이니라.(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금강경의 이 구절이 스님의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아아, 바로 여기가 소크라테스의 사상과 동양철학이 일치하는 곳이구나. 불교의 골수가 여기에 있구나' 스님은 이 경전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때 어떤 스님이 산을 다니다가 절에 들렸습니다.
"학생, 무엇을 읽고 있나?"
"금강경을 읽고 있습니다"
"불경은 왜 읽지?"
"불교를 이해하기 위해서입니다"
"불교는 이해하는 것이 아니야"
"예?"
"불교는 잊어버리는 것일세. 학생도 아는 것이 너무 많구먼. 불교는 이제까지 배운 걸 다 잊어버리는 것이지 이해하는 것이 아니란 말이지."

듣고 보니, 그 말에 뜻이 있었습니다.
'아! 불교는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잊어버리는 것이구나. 그런데 어떻게 해야 잊어버릴 수 있을까?'
이로부터 스님의, 아니 정확하게는 청년 덕인(스님의 속명)의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출가를 할 것인가?'
'아니다. 4대 독자인 내가 남한에 내려와 중이 되었다는 사실을 부모님이 아시면 얼마나 슬퍼하실 것인가'.
'그러면 크나큰 불법 진리를 멀리서 바라만 보고 평생 속가인으로 살아갈 것인가?'
'아니다. 4대 독자가 대체 무어란 말인가. 부처님은 한 나라의 왕자로 모든 걸 다 버리고 설산으로 들어가셨는데 이만한 용기도 내게는 없단 말인가'
스님은 결국 1947년 10월에 계를 받아 출가를 하셨고 출가한 지 열흘만에 100일 기도에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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