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56년 하안거 해제를 이틀 앞둔 8월29일 덕숭총림 수덕사를 찾았다. 올 여름 덕숭총림에는 120여명의 수좌들이 정진했다. 정혜사 능인선원에 25명의 스님이 방부를 들였고, 견성암에는 60 여명의 비구니 스님들이 한 철을 났다. 개심사 보현선원, 향천사 천불선원과 비구니선원인 보덕사선원, 무문관인 매화선원에도 수좌들이 더위를 잊고 정진했다. 8월29일 태풍이 지나간 뒤 정적이 감도는 정혜사 능인선원 향적당에서 덕숭총림 방장 설정스님을 만나 법문을 청했다.
 
   
하안거 해제일을 앞둔 8월29일 덕숭총림 수덕사를 찾아 방장 설정스님을 만났다. 신재호 기자
# 능인선원과 경허, 만공스님의 인연은…
정혜사 능인선원은 한국 선의 중흥조라 할만한 경허만공스님이 정진하던 곳이다. 경허만공스님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꺼져가던 선의 불씨를 되살렸다.
조선조 500년은 불교가 탄압받던 시기다. 쇠퇴를 거듭하면서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신행활동이 중단됐던 시기다. 시기적으로 신미양요, 갑신정변 등 국내 정변이 있었고, 대열강들이 한반도를 놓고 쟁탈전을 벌이던 시기다. 국민의 생활은 피폐해지고 불교도 그만큼 쇠퇴했다.
그 때 해성처럼 나타난 분이 경허스님이다. 조선조 500년은 선이 활발발하지 못했다. 서산사명당시 조금 반짝했고, 봉은사 주지 태고보우스님 때를 제외하면 고세가 침체됐다. 경허스님이 등장하면서 선의 복원이 시작됐다.
오늘날 우리가 선을 하게 된 이면에는 경허선사의 중흥한 토대위에서 이뤄진 것이다. 해인사 범어사 화엄사 송광사 실상사 수많은 사찰을 돌면서 경허스님이 선을 중흥시키는 역할을 한다. 경허스님 뿐만 아니라 그 제자도 뛰어났다. 수월스님, 만공스님, 해월스님, 한암스님 등 전법제자뿐만 아니라 당시 선지식을 지도했다. 선의 기반을 다시 만들고 중흥하게 된다.
정혜사도 경허스님과 만공스님의 진영을 모시고 있다. 만공선사가 주석한 이후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당시에는 요사채 하나뿐이었는데 선 수행자들이 몰려들자 능인선원을 개원했다.
# 능인선원은 어떤 하안거를 보냈나.
이번 하안거 때 능인선원에는 25명의 스님이 정진했다. 덕숭산의 가풍이라면 다른 사찰에 비해 운력이 많다. 올 여름 유난히 더웠다. 실내온도가 35도인데 쉬지 않고 정진하고 땡볕에도 일을 했다. 스님들이 먹는 채소는 손수 키웠다. 처음 하는 수좌들은 어려워했지만 보람도 느꼈다.
고된 운력의 가풍은 방장 스님이 어릴 때부터 보고 익힌 것들이다. 스님이 처음 덕숭산에 왔을 때가 10대 때다. 그 때는 사찰 소유의 재산이 많지 않았다. 산을 개간해서 밭을 만들었다. 일일이 돌을 들어다 옮기며 전답을 만들었다.
120여 명이 살았는데 그 양식을 농사를 지으면서 마련했다. 농사를 짓지 않으면 생활이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벼농사까지 짓지 않지만, 그 전통을 이어 가능하면 자급자족하자는 생각으로 스님들은 채마밭을 일군다.
# 정진일과는 어떤가.
자기공부는 자기 스스로 해야 한다. 죽비소리에 공부한다는 것은 초심자이고, 공부하겠다고 작심한 스님은 누가 얘기하지 않아도 스스로 공부한다. 선원장 스님은 일종식하고 장좌한다. 등을 땅에 붙이지 않는다. 여러 수좌들이 10시간 12시간 정진을 한다.
능인선원에는 30년 이상 정진한 수행자들이 많다. 방부들이기 어려운 선원이다. 많을 때는 11대1 정도이고, 보통 8대1 이상이다. 모든 사람을 다 받을 수는 없어 안타깝다.
   
덕숭총림 정혜사 능인선원은 해제를 앞두고 수좌들의 용맹정진이 더욱 가열차다. 신재호 기자
# 만행을 나서는 스님들에게 당부말씀이 있다면.
공부가 다 끝나지 않았으면 빨리 자리로 돌아오라. 참선은 남녀노소 종교가 있건 없건 모두가 다 해야 한다. 참선법을 실천해보라. 아마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큰 활력소가 될 것이다. 누구든지 해야 할 일이다. 마음병 고치는데 이것 외에는 없다.
어떤 마음을 갖고 살아야 하는가. 보통 스님이라 하면 사람인변에 일찍이야 순수무구한 사람이다. 그건 결과적인 상태이고, 순수무구한 마음으로 돌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생각을 쉬어야 한다. 지금 대부분 중생이 괴로운 것은 너무 물들어 있기 때문이다.
잘못된 것에 물들어 있어 불행한 것이다. 명예에 물이 들고 돈에 물이들고, 애욕에 물이 들고 특히 중생이 갖고 있는 괴로움의 근원이라고 하는 탐진치만의라는 다섯가지 잘못된 생각에 물들어 있다.
안되는 일을, 불행할 일을 찾아서 들어간다. 오만을 부리고 산다. 모든 생명이 소중하고 존경해야 할 대상이고 내가 보듬어야 할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오만방자하게 잘난척하고 깃을 세우고 뿔세워서 사람들을 위협한다. 그리고 의심한다.
결국은 여기서부터 불행이 시작된다. 자기만 불행한 것이 아니라 남까지 불행하게 만든다. 이걸 쉬는 일은 선 이외에 없다. 나는 어떤 존재이고 어디로 갈지도 모르면서 오만하고 서로를 불행하게 하는가. 잘못된 오염물질을 빼내는 것이 선이다. 다섯가지만 내려놓으면 된다.
이 세상 사는 데 다 내려놓으라면 어떻게 살라는 것인가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박복한 짓 하면서 복이 올 것이라고 기대하니까 문제다. 불교적 연기법이 아니더라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관계적인 것이다.
부부간의 관계, 부모자식간의 관계, 친구와의 관계가 중요하다. 정성껏 최선을 다하고 살았는데 나쁜결과 올 수도 있다. 진실하게 최선을 다하면 기회가 온다. 관계도 제대로 못하고 정성도 들이지 않았는데 좋은 일이 올거라고 기대하는 게 어리석은 중생의 모습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마음을 비우고 출발해야 좋아진다. 그것이 선이다.
# 종단에서 추진하고 있는 자성과 쇄신 결사에 대해서 한 말씀 부탁드린다.
불교는 윤리나 도덕적인 위상을 갖추고 있다. 고등종교임에도 그것을 안지켜 자성과 쇄신을 하자고 하니까 우리 근본부터 부정하는 것이라 안타깝고 부끄럽다. 스님이 제자리로 가야 한다.
스님은 원력과 신심, 공심을 가슴에 담고 사는 사람이다. 부처님의 진리에 대한 무한한 신심과 원력을 가져야 한다. 내가 이 공부를 해서 진리를 깨달아 중생에게 보답하고 일체생명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원력을 세워야 한다.
거기에 제일 중요한게 공심이다. 이미 스님이 된 순간 공인이다. 사인이 아니다. 공심이 결여되버리면 부정부패는 자동적으로 따라온다. 그래서 공심과 원력과 신심을 가진 스님을 만드는게 중요하다. 그것은 교육을 통해 갈 수 있다. 쇄신과 자성은 자동적으로 이뤄질 것이다.
# 돈선거로 교계가 시끄럽다.
부끄러운 일이다. 교육을 잘 못시켰기 때문이다. 스님의 자격, 스님이 제대로 안된 사람은 어떤 일을 해도 안된다. 스님으로서 자질이 안되고 사상적 기반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이런 일을 일으킨다. 부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말세의 비구들이 나의 옷을 가져가 도둑질을 해먹고 산다고 했다.
스님은 교양, 지식, 감성과 이성을 담보한 스님이 돼야 한다. 수행을 해서 자기를 가라앉힌 사람이 돼야 한다. 스님들 유형이 대여섯가지가 있다. 첫째는 아양승이다. 부처님 교리가 무엇인지 진리가 무엇인지 모른다. 사람들에게 설법도 못한다.
두번째 독거승이다. 머리만 깎았지 탐진치로 꽉찬 속인이다. 세번째는 조소승이다. 속인도 아니고 중도 아닌 박쥐같은 사람이다. 가사입은 도적이라 피가사적이다. 절에 와서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원을 세운게 아니라 생활인으로 살면서 삼보정재를 축내는 사람이다. 지옥의 찌꺼기들이다.
# 대선을 앞두고 있는데, 차기 대통령은 어떤 사람이 돼야 할까.
편견과 독선, 아집을 가진 사람이 대통령이 돼서는 안된다. 대통령이라면 전체 국민을 위한 생각을 해야 한다. 이기심을 갖거나 독선과 아집으로 남의 의견이나 의사를 무시하는 사람은 대통령이 되면 안된다.
대통령이 뭐 때문에 챙길 것 다 챙기려고 하나. 그럴 때 국민들은 괴롭고 슬프다. 대통령과 대통령 친인척, 모든 관료들 마음을 비우고 멸사보국을 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나라가 좋아진다.
# 마지막으로 불자들에게 법문 부탁드린다.
사회가 어렵다고 한다. 마음을 어떻게 갖느냐 스스로를 항상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좋은 마음을 갖고 살길 바란다. 세상을 밝고 아름다게 보면 이 세상은 즐거움을 주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본다. 돈이나 명예를 바라고 부족하다고만 생각한다면 불행한 사람이라고 본다. 좋은 마음을 갖고 살아가주길 바란다.
   
정혜사 능인선원에 방부를 들인 수좌들은 한 소식을 듣기 위해 불철주야 정진하고 있다. 신재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