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계한 지 10일이 지나서 숭산스님은 산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 원각산 부용암에서 백일 기도를 하였습니다. 식사로는 솔잎을 말려 빻은 가루로 벽곡을 하면서 매일 20시간 동안 신묘장구대다라니 기도를 하였습니다. 또 하루에도 몇 번씩 얼음을 깨서 목욕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대단히 종교적인 수행이었습니다.

그런데 곧 회의가 들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기도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무엇하러 이토록 극심한 고생을 하는가? 산을 내려가 조그만 암자를 하나 얻어서 일본 중처럼 결혼하고 단란한 가정을 꾸미는 가운데 천천히 도를 닦을 수도 있지 않은가?
밤이면 이런 생각이 너무 간절해서 선사는 떠나기로 결심하고 짐을 꾸렸습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이 되면 다시 마음이 맑아져서 이렇게 보따리를 싸고 풀고 한 것이 9번이나 되었습니다.

50일이 지나자 선사님은 몸이 쇠약해져 기운이 하나도 없게 되었습니다. 매일 밤마다 무시무시한 환상이 보였습니다. 마구니가 어둠 속에 나타나 욕설을 하기도 하고 유령이 나타나 삼킬 듯 달려들면서 차가운 발톱으로 목을 할퀴기도 하였습니다.

커다란 딱정벌레가 나타나 다리를 물려고도 했습니다. 호랑이와 용이 나타나 바로 앞에서 삼킬 듯 덤벼들어서 그는 전신이 다 얼어붙는 듯하였습니다. 그 뒤 한 달이 지나자 무시무시한 환상에 이어 이번에는 즐거운 환상이 나타났습니다. 부처님이 나타나 경을 가르치시기도 하고 어떤 때는 멋진 옷을 입은 보살이 나타나 스님에게 극락에 갈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또 어떤 때는 스님이 지쳐 잠깐 무릎을 끓고 엎드려 있으면 관세음보살이 나타나 잠을 깨우기도 하였습니다. 80일째가 되면서부터 스님은 힘이 솟구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의 살갗은 솔잎처럼 파랗게 변색되어 있었습니다.

백일 기도가 끝나기 1주일 전인 어느 날, 스님이 목탁을 두드리며 도량석을 돌고 있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11살이나 12살쯤 되어 보이는 동자 둘이 양쪽에 나타나서 선사에게 절을 올렸습니다. 동자들은 알록달록한 옷을 입었고 하늘에서 내려온 듯 얼굴이 아름다웠습니다. 스님은 그들을 보고 무척 놀랐습니다.

자신의 마음이 굳세어지고 완전히 맑아졌다고 느꼈는데 대체 어디서 이런 것들이 나타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좁은 산길을 걸어갈 때 두 동자는 뒤에서 따라왔는데, 바위사이로 지날 때 동자들은 바위 속을 통과해 걷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30분 동안 조용히 뒤에서 따라오다가 스님이 불단 앞에 다가가 절을 올릴 때가 되면 불단 뒤로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일이 1주일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드디어 마지막 100일이 되었습니다. 스님은 암자 밖으로 나와 목탁을 두드리며 염불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그는 자신이 몸을 떠나서 무한한 공간에 있음을 느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저 먼 곳으로부터 들려오는 목탁 치는 소리와 자기 음성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잠시 그 상태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스님이 다시 자신의 몸으로 돌아왔을 때 깨달았습니다. 바위, 강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볼 수도 있고 들을 수 있으며, 이 모든 것이 참다운 자성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인 것이고 참 진리는 바로 이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날 밤 스님은 잠을 푹 잘 수 있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깨어나서 한 사나이가 산에 오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 나무에는 까마귀들이 날고 있었다. 그는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습니다.

원각산하 한길은 지금 길이 아니건만,
배낭 메고 가는 행객 옛 사람이 아니로다.
탁, 탁, 탁, 걸음소리는 옛과 지금을 꿰었는데,
깍, 깍, 깍, 까마귀는 나무 위에서 날더라.

그후 스님은 산을 내려와 만공선사의 가르침을 받았던 고봉스님을 만났습니다. 고봉스님은 당시 국내에서 가장 뛰어난 선사였으며, 또 가장 엄하기로 소문이 난 분이었습니다. 당시 그는 거사들만 가르쳤는데, 평소 그의 입버릇이 '중들이란 다 도둑놈'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자신의 깨달음을 고봉스님로부터 점검 받고 싶어서 목탁을 들고 찾아갔습니다. 고봉스님 앞으로 간 스님은 "이것이 무엇입니까?" 하면서 목탁을 디밀었습니다. 이 물음에 고봉스님은 목탁채를 집어서 목탁을 쳤는데, 이런 행동은 스님이 예상한 대로였습니다.

숭산스님이 질문을 했습니다.
"어떻게 참선해야 합니까?"

고봉스님이 말하였습니다.
"옛날 한 스님이 조주선사에게 묻기를 '달마대사가 서쪽으로 온 까닭은 무엇입니까?" 라고 했더니 조주는 '뜰 앞의 잣나무'라고 했다. 이것이 무슨 뜻이냐?"

스님께서는 알 것도 같았으나 어떻게 답을 해야할 지를 몰라 "모릅니다" 라고 햇습니다.

고봉스님은 "모르면 의심덩어리를 끌고 나가라. 이것이 바로 참선 수행법이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 해 봄과 여름 동안에 숭산스님은 항상 행선(行禪)을 하였습니다. 가을이 되자 스님은 수덕사로 옮기고 100일 간의 결제에 들어가 선과 법거량을 배웠습니다. 겨울이 되었을 때 숭산스님은 중들이 열심히 수행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무슨 수를 써서든지 다른 스님들의 공부를 도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스님이 불침번을 서는 어느 날 밤에 (당시는 도둑이 많았다) 그는 부엌으로 들어가 놋사발과 냄비를 모두 꺼내 앞마당에 둥그렇게 늘어놓았습니다. 다음 날 밤에는 법당안 불단 위의 부처님을 벽을 향해서 돌려놓고, 국보였던 향로를 내와서 견성암 마당 위 감나무 꼭대기에 올려놓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었을 때 절에서는 난리가 났습니다. 어떤 사람이 왔다고도 하고 또 산신이 내려와 스님들 공부 열심히 하라고 혼을 냈다고도 하는 소문이 좍 퍼졌습니다.

셋째 날에 숭산스님은 비구니들 처소로 가서 방밖의 고무신 70켤레를 집어다가 덕산스님의 방 앞 댓돌 위에 고무신 가게 진열장같이 늘어놓았습니다. 바로 그때 비구니 한 사람이 밖으로 나왔다가 신발이 없어진 것을 알고 잠자는 다른 비구니들을 모두 깨워서 결국 스님은 붙잡히게 되었습니다. 다음날 그는 대중들 앞에서 대중공사를 받게 되었는데 거기에 참가한 스님들 대부분이 숭산 선사에게 또 한번의 기회를 주기로 결정하여 (비구니들은 그를 미워했지만) 선사는 수덕사에서 쫓겨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신 그는 큰스님들을 찾아다니며 참회를 해야만 했습니다.

숭산스님은 자신의 삶에서 그렇듯 신통한 일들이 일어나자 수행을 지도해 줄 스승을 찾기 시작했습니다.